기아자동차지부 판매지회

대여 가전 방문관리 노동자 건강·안전 ‘적신호’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 “노동환경 개선, 제도 보완 시급”

LG전자 가전제품을 대여하고 유지·관리하는 LG케어솔루션 노동자 상당수가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며, 높은 노동강도와 여러 질환에 시달리는 사실이 드러났다.

금속노조는 8월 19일 오후 국회 본관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LG전자 렌탈 가전 방문관리 노동자 안전·건강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방문점검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 대책 마련과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금속노조는 이날 토론회에서 LG케어솔루션 노동자 안전·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조 서울지부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2020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LG케어솔루션 노동자의 근무 상황과 노동강도·안전사고·감정노동 실태 등을 설문 조사했다. 404명이 참여했고, 현장조사와 면접 조사를 병행했다.

발제를 맡은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은 응답자 58.5%가 주당 6일 이상 일한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방문과 방문 사이에 컨택, 즉 고객과 약속 잡는 일에 주당 평균 6.11시간을 썼다. 휴식시간이 없는 셈이다.

이 노동자들은 한 달 평균 182.56건의 계정을 처리한다. ‘계정’은 방문 노동자가 담당하는 가전제품 개수를 뜻한다. 절반 넘는 노동자(50.5%)가 한 달 평균 161~200건의 계정을 맡았고, 201건 이상 처리한다는 노동자도 22.8%에 달했다.

금속노조가 8월 19일 오후 국회 본관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LG전자 렌탈 가전 방문관리 노동자 안전·건강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고 있다.

LG케어솔루션 노동자는 근무 일수가 길고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한 달 일하고 실제 손에 쥐는 돈은 평균 180만 원도 안 된다. 사측은 기본급은커녕 연차나 연장·휴일근무수당, 퇴직금도 주지 않았다. 업무위탁 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핑계를 댔다.

“화장실도 못 가고 끼니 거르기 일쑤” …
일하다 몸도 마음도 병드는 LG케어솔루션 노동자들

하루 근무 중 평균 식사 횟수를 묻는 질문에 16.5%가 먹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근무 중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는 응답은 15%로 나타났다. 이나래 연구원은 “식사시간과 화장실 사용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위장·소화기계·비뇨기계 질환을 겪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방문관리 일이 건강을 해치거나 안전상 위험하다고 느끼는 비율은 84.7%로 나타났다. 업무가 건강을 해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각각 84.7%와 85.5%가 그렇다고 답했다.

업무 탓에 실제 건강이 나빠진 경우가 많았다. 치료받는 질병을 중복응답으로 물었더니 76.7%가 근육과 뼈, 관절질환을 앓는다고 답했다. 허리통증(51.6%), 비뇨기계 질환(35.8%), 위장질환(31.3%), 시력 저하(30.1%) 증상도 많았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과 감정노동 문제가 심각했다. 응답자의 76.7%가 통증이 1주일 이상 지속되고 통증 정도가 심한 근골격계 질환을 겪는다. 94.8%가 근골격계 질환 증상이 있었다. 감정 부조화·손상 등 감정노동 각 평가 영역에서 고위험군 비율이 높게 나왔다.

이나래 연구원이 8월 19일 ‘LG전자 렌탈 가전 방문관리 노동자 안전·건강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LG케어솔루션 노동자 안전·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LG케어솔루션 노동자들은 무거운 물건을 직접 들고,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일하는 노동이 건강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사측의 성과 압박과 고객 민원 스트레스도 크다고 했다.

업무환경은 안전하지 않았다. 최근 12개월 동안 경험한 사고를 물은 질문의 중복응답 결과 ▲부딪힘 245건 ▲절단·베임·찔림 182건 ▲개에 물림 127건 ▲넘어짐 124건 등으로 나타났다. 1인 근무로 고객 폭력 위험에 쉽게 노출되고 있었다.

이나래 연구원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방문 관리 노동자의 노동강도 완화와 안전 작업환경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기본급 보장·적정 계정 수 조정 ▲휴식시간·공간 마련 ▲작업환경 개선 ▲위험 거부 권리 보장 ▲노동안전보건교육 시행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나래 연구원은 화장실 사용보장과 안전보호구·작업 공구 개선, 설치·관리·수리업무 간 일원화 수칙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방문관리 노동자 보호를 위해 2인 1조 근무체계를 도입하라고 LG전자 사측에 촉구했다.

노동조건 개선에 노동조합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나래 연구원은 “금속노조가 가전제품 관리업무 특성과 고객 대면 업무의 문제점, 사측의 성과 압박 등 방문관리 노동자가 처한 위험한 상황을 사회에 널리 알려야 한다”라며 방문관리 노동자 산업재해 쟁점화·인정 투쟁을 제안했다.

방문관리 노동자, 건강 사각지대에 방치 …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범위 확대 등 법제도 개선해야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은 토론에서 한국의 방문관리 노동자 안전보건 제도 미비를 꼬집었다. 이진우 센터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가 있지만, 방문점검원 노동자는 빠져있다. 안전·보건교육조차 받을 권리가 없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이 8월 19일 ‘LG전자 렌탈 가전 방문관리 노동자 안전·건강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선별·배제 방식에서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방문관리 노동자는 직업 특성에 맞춰 시행하는 특수건강진단을 받을 수 없다. 건강을 해치는 위험요인이 많지만, 조기 진단하고 건강을 관리할 체계가 현행법 제도에 없다는 게 이진우 센터장 설명이다.

이진우 센터장은 정부가 방문관리 노동자를 건강관리 사각지대에 내버려 두고 있다고 비판하며, 산업안전보건법을 선별·배제 방식에서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도 제도 보완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이창욱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 산업보건기준과 사무관은 올해 하반기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와 특수건강진단 적용 대상·업종 확대 가능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