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고려대 교문에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이 대자보를 붙인 사람은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씨였다.
지난 29일 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건물 앞에는 또 다른 대자보가 나붙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는 제목의 대자보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08학번이라고 밝힌 채상원 씨가 붙인 것이었다.
한 장의 대자보를 붙인 채 자발적으로 퇴교를 선택한 고려대 김예슬 씨에 이어 스스로 거부하겠다고 나선 서울대 채상원 씨까지 온. 오프라인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열기가 뜨겁다.
‘자격증 장사 브로커’, ‘무한 경쟁의 닫힌 공간’ 대학
김 씨는 대학교육과 관련해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또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 과정에 돌입한다”고 했다.
채 씨 또한 “대학이란 곳은 본격적 무한 경쟁의 닫힌 공간일 뿐이며 그 공간은 우리에게 그 어떤 삶의 의미도, 방향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며 “제2전공 의무화, 영어 강의 확대, 상대평가제 등의 제도는 더욱 많은 것을 강요하고 무조건 일렬로 줄을 세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위기를 그 어떤 주류 경제학도 설명하지 못하고 패닉에 빠진 마당에, 대학은 별 고민 없이 지난 수십 년간 사용해온 커리큘럼을 답습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그들은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지만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지금의 대학을 거부하기로. 대학의 주인이 되어 대학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로”로 했다.
김예슬 씨는 마지막에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며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고 글을 맺었다.
채상원 씨는 이에 대해 “그렇다면 이 탑을 반대하는 모든 우리 돌멩이들이 힘을 합쳐 흔들어보자. 그리고 우리들의 새로운 탑을 세우자. 시대는 더 이상 낡은 탑을 거부하고 새로운 탑을 요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누리꾼들 "경쟁과 취업, 영어 지옥이 된 대학"
한편, 김예슬 씨의 자퇴 선언 이후 대학생 누리꾼들은 '김예슬 선언'이라는 온라인 까페를 만들고 이번 채상원 씨 대자보 선언에도 지지와 반대의 의견을 올리는 등 온라인상에서 찬반 논쟁이 뜨겁다.
금오공대생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틈틈히 알바를 하며 학비를 벌지만 알바로도 충당이 안 되는 등록금과 생활비”때문에 “매학기, 매달,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만” 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금 등록금을 미리 마련해 두려고 맞벌이 해오던 부모님 아니셨던가”라며 “대학교 포기하겠다는 사람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김예슬 씨와 같은 학교를 졸업했고 서울 소재 유명한 사립대학교에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힌 누리꾼은 “지금의 대학은 경영학과 같은 실용적인 과는 과대 발전하고 나머지 인문학 사회과학 순수과학에 관한 과들에는 거의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대학교을 운영할거면, 왜 대학교인가요? 차라리 경영 College로 운영하는 게 나을 듯 하다”고 비난했다.
이어 “대학이 학문의 장이 못하고, 경쟁과 취업, 영어 지옥이 되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학문을 가르치지도, 정당한 경쟁의 룰을 가르치지도 못하는” 대학문제에 대해 “이 두 사람은 우리 20대의 문제를 한국 사회 표면으로 이끌어 낸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20년 전 쯤의 제가 다니던 중학교 교실과, 현재 중학교 교실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듯이 미래의 대한민국 교실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저희 부모님처럼 맹목적으로 대학에 올인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싶다”고 전했다.
반면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한 누리꾼은 “자격증 장사브로커, 기업들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한 하청업체가 된 대학을 만든 것은 학교가 아니라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며 “스스로 남을 밟고 올라가야 살아남을 거란 생각으로, 남들보다 앞서겠다는 생각으로 별별 종류의 자격증을 다 따려 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학생들이 학교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자신의 책임도 전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정작 대학 교육의 무용함과 과잉된 대졸 공급에 가장 크게 신음하는 비서울권/비일류 학생들의 고군분투는 대학 거부 운동과는 그 어떤 접점을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들의 대자보는 끝없는 무한경쟁의 트랙 위를 불안하게 뛰고 또 뛰며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하며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젊은이들의 현실과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이에 따라 채상원 씨의 대자보가 김예슬 씨와 맞물리면서 그들이 던진 ‘대학 교육 거부’사태가 향후 대학가에서 확산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다가오는 6.2교육감 선거에까지 영향이 미칠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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